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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말과 글-"코로나가 바꾼 미디어 이용과 일상, 어떻게 볼 것인가?"] 포스트코로나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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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한국어문학부 3학년)


비교과 프로그램이자 특강인 ‘코로나 시대의 말과 글’은 비대면 시대를 바이러스로 인해 예상보다 빠르게 맞이한 인류가 어떤 글과 말로 각 분야를 설득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장이다. 특강은 문학, 철학, 미디어 등으로 다양한 분야와 접목되었고 그 중에 나는 최근 관심이 깊어진 미디어분야 특강을 선택했다.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유홍식 교수님의 "코로나가 바꾼 미디어 이용과 일상, 어떻게 볼 것인가?" 특강이었다.


본 프로그램을 신청했을 당시, 나 스스로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태해지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느꼈다. 특히 모바일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이 현저히 늘었다는 걸 체감하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욱 들었다. 아마 이것은 코로나 블루(;'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변화가 도래하며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일지 모른다고 무덤덤하게 넘겼다.한편, 세계적으로 OTT플랫폼은 호황을 맞았고, 인기 작품을 계약에 성공시키기도 하며 그 박차를 가했다. 내가 밤낮이 바뀌었을 때도, 시험이 끝났을 때도, 지하철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내 마음대로 원하는 작품을 시청할 수 있는 OTT플랫폼은 나를 열정적인 구독자로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점차 나 스스로가 미디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미디어에 의해 지배당하는 나를 눈치챌 무렵, 코로나 시대의 말과 글 특강을 듣게 된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모두 특강의 전과 후로 나 스스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다짐하는 텍스트이며, 오늘날 숙명의 학우들과 함께 어떻게 주체적인 시청자로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글이다.


인간을 죽음에 몰아넣는 것은 지구를 습격한 외계 생명체도, 거대한 짐승의 공격도 아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였다. 과거부터 우리는 몇 차례 전염병과의 전쟁을 치러 왔다. 때로는 무식하게 죽어 나갔으며, 때로는 나름의 대처에 성공했지만, 지금은 신종 바이러스의 여파로 무식하지 않게 대처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문화, 사회의 영역에서도 Covid-19는 그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데, 특히 바이오, 헬스 케어, 제약 관련 주식의 상승세와 뮤지컬, 연극 등 공연예술계가 맞은 직격타, 여행사, 항공 숙박 업체의 갑작스러운 부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많은 미디어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코로나 19를 계기로 미디어가 전환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기반의 OTT플랫폼(Over the top), IPTV등이 떠오를 무렵 코로나가 그 박차를 가해 성장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아한 것은 이런 나름의 분석 따위를 해대고 있는 나조차도 코로나 이후 미디어 변화에 관통하는 현재 진행형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Netflix, Watcha, Tving의 3개 OTT플랫폼을 정기적으로 보고, 유료 정기결제 Youtube Premium을 애용한다. 그러면서도 각 플랫폼에서 더 새롭고 다채로운 것을 기대하고, 찜하고, 구독한다. 볼 것에 대한 갈망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선택된 콘텐츠는 ‘나’라는 시청자의 시간을 산다. 이에 대해 얼마 전만 해도 인지를 못했는데, 특강에서 던진 논의에 응하면서 알 수 있었다. 특강을 통해 앞선 나의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내가 참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스스로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나를 탓하고, 질책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였다. 2시간 남짓의 강의를 통해 내가 느끼고, 변화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정지된 동영상을 재생시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왜 내가 그렇게 지배되었는지 나름의 구조적 배경과 특이점을 인식하였고 그것은 다음과 같다.


구체적으로 특강에서 이야기한 ‘호모필리(Homophily)’,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이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 호모필리란 정치, 이념,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현상(유유상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불통, 배척, 제한된 정보교환, 사회 전체 커뮤니티의 분절/붕괴, ㄷ립과 갈등의 극화, 표현의 극화를 낳을 수 있다. 필터버블은 미디어 이용에서 AI시스템이 작동되어 내가 읽는 뉴스를 분석하거나 동영상 이용에 대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 등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도,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 단어들을 난 사실 처음 들었다. 그만큼 코로나 이후의 삶에 쉽게 스며들고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앞선 단어들은 쉽게 말해 알고리즘이라는 화려한 AI(인공지능, Artifical Intelligence) 기술에 지배받는 인간에게 던지는 메세지였고, 각종 플랫폼을 통해서 추천 영상을 보는 인간들이 깨달아야 할 단어였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Netflix를 통해 한 번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Walking Dead)’를 시즌5까지 Binge Watching(몰아보기)하고는 자꾸만 뜨는 좀비 영화에 열광하고, Watcha로 한국 좀비 영화 <서울역>, <반도>를 넘어 일본 좀비영화 <아이엠어히어로>까지 보고 있는 거북목을 한 ‘나’였다.


영상매체에 열광하며 미디어업계에 종사할 것이라는 당찬 꿈을 갖고도 그저 화면을 남 일처럼 보는 삶밖에 살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다소 어려웠다. 일단 쉬운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호도에 대해서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 영상과 콘텐츠를 보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자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플랫폼의 ‘시청 기록’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었다. Netflix의 예를 들면 <워킹데드>부터 시작해서 <워킹데드> 초기 시즌 감독의 작품까지 꽤나 연결고리가 있었다. 이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영상물의 장르 혹은 좋아하는 감독, 연출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곧 선택권에 정당성을 부여받는 일이었고, 무분별한 시청을 줄여주는 절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2020년 12월 코로나가 종식하지 못한 채 전 세계는 연말을 맞았다. 11월부터 다시 급증한 국내 코로나 19 확진자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또 한 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요즘 20-30대의 무증상 환자가 늘어나면서 혹시 자신이 무증상 확진자가 아닐까 검열하기도 한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계기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나약한 인간이 갖춰야 할 것은 다름 아닌 굳건함이 아닌가 싶다.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 건강하게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 혹은 나 스스로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등 말이다.

 

이제 정말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 완연한 백신이 나온다 하더라도 모든 국가가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계층 및 직군이 살만한 시간이 되기까지는 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 같은 것은 바이러스의 재확산 및 변이 바이러스의 출몰과 같은 것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몽상에 불과하다. 결국 우리가 또 다른 바이러스로의 대비와 예방을 해야 하고, 혹시 모를 모든 상황에 대비해 스스로를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디어와 관련한 사항도 그러하다. 비대면 사회가 되면서 외부로 나가 사람을 만나는 활동보다 화상으로 혹은 문자, 전화와 같은 통신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지고 있다. 세상에 대한 인지가 떨어지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환경이 된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멀어진다.


사람 사는 세상은 서로 돕고 소통하는 사회인데, 이것은 청·장년층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조선 에듀 스토리의 블로그 포스팅에 의하면, 초등학교 저학년에게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 배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집단적으로 교실에 모여 수업할 때보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학부모의 불만들도 늘어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SNS를 통해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 활동을 통해 근육을 유지해야 하는 독거노인들은 집에만 홀로 머물면서 더욱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치매 질환을 앓고 있거나, 보호 관찰이 필요한 고연령의 노인들은 말동무나 보호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대면 사회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령을 막론하고 우리는 우울이나 상실에 빠질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인처럼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있어서 청·장년층이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우며 열악한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학부모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SNS만 있지 않다는 것을 역할놀이 등으로 설명해주어야 하고, 부양할 부모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노인의 가족들은 통화 및 연락을 통해 소통의 창구를 찾아야 한다. 고로 코로나는 연령과 계층을 막론하고 위험한 바이러스임에도 면역력이나 주관적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서로를 돕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계속해서 돕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서로를 돕기 전에는 나 스스로를 파악하고 이겨내는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즉,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미디어는 쉽게 시간을 뺏어가고 우리 삶을 나태하거나 안일하게 지배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흥미롭고 시간이 잘 가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고로 내가 몇 시간 누워서 어떤 자세로 어떤 프로그램을 무엇을 통해 보는지를 인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닌 시간을 보내는 시청자가 되어야 한다. <페스트>나 <총, 균, 쇠>와 같은 도서가 우리에게 질병과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글로 남겨두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바이러스 앞에 나약했다. 나는 그것이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지 않는 이유이자, 지배할 수 없는 이유라 생각한다. 인간 외에도 각종 동식물과 미생물, 공기, 바다, 구름, 미생물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총성 소리 없는 죽음 앞에서 나약한 나 자신을 일으키는 법을 깨우쳐 본다. 그것이 휴대폰을 놓고 일기를 쓰는 일일 수도,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일 수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우리는 코로나 시대의 말과 글에 대해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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